페르시아 여백 외환

마지막 업데이트: 2022년 7월 8일 | 0개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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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페르시아의 시작과 멸망과 또 다른 시작

페르시아인들은 대게 중개 무역으로 큰 돈을 벌었고 정복활동으로 새로운 땅과 노예로 풍요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관용 정책으로, 공용어인 페르시아어를 제외한 다른 언어도 페르시아의 법(납세와 국방)만 잘 따르면 아무런 문제가없게 해두었습니다. 모든 왕조의 페르시아는 이렇습니다.

20개 주에 총독 파견, 왕의 귀와 눈을 파견하여 감시를 하였습니다.

조로아스터교

조로아스터교는 아후라 마즈다를 유일신으로 둔 일신교이고 세상이 선과 악의 대립으로 균형을 맞춘다는 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후 다른 선/악의 배경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에서 성장했으며, 사산 왕조 페르시아에서 국교로 인정되었습니다.

마니교 - 조로아스터교 + 크리스트교 + 불교의 혼합교 - 사산왕조에서 유행하였습니다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전성기를 이끈 왕 : 다리우스 1세

페르시아 전쟁 (아테네와의 전쟁) - 마라톤 전투, 살라미스 해전(크세르크세스)

많은 영토를 차지했던 페르시아였던 만큼, 동서문화 융합을 했습니다. 관용정책 덕분에 교류도 활발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정복당합니다. 헬레니즘 문화의 요소 중 하나 입니다.

사산 왕조 페르시아

알렉산드리아 제국의 분열 후 생긴 파르티아와 박트리아에서, 파르티아는 이 사산왕조 페르시아에 먹히게 됩니다. 박트리아는 그리스 문화를 전파하였는데, 후에 쿠샨왕조에 흡수됩니다. 그래서 이곳의 대승불교가 불상을 제작한 것이죠. (그리스 문화는 신을 인간 처럼 생각했습니다. 쿠샨 왕조 이후 석가모니는 신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파르티아는 아케메네스 페르시아의 후예를 자처했습니다.

어쨌거나 사산왕조 페르시아는 비잔티움(동로마)와 경쟁하듯 부강해졌습니다.

이렇게 비잔티움과 전쟁하니 기존의 무역로는 끊겨버리고 상인들은 바닷길을 개척했습니다. 그래서 사산왕조는 더이상 중개무역으로 돈을 벌 수 없게 되었습니다.

대신에 상인들이 거치는 바닷길 근처 나라들 (이집트 등..)은 부유해졌습니다.

장기적으로 쇠약해진 사산왕조 페르시아는 이슬람세력에 의해 멸망하였습니다. (동로마 또한 이슬람 세력에 의하여 멸망하였습니다.)

오리엔트의 통일 국가들 - 아시리아, 페르시아, 파르티아의 특징

첫째는, 동서 무역의 요충지인 서아시아 지역에서 중계무역에 충실했기 때문에 탄탄한 경제력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 지역 자체가 동서양을 연결하는 요지이므로, 이 지역의 모든 통일국가가 탄탄한 경제력은 다 기본이었기에 이 부분은 별로 부각되지 않습니다.

둘째 이유는, 철제무기를 가장 잘 활용하였다는 점이죠. 히타이트가 오리엔트에서 처음으로 철제 무기를 사용한 이후, 많은 국가들이 철제 무기를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 아시리아는 철제 무기의 성능을 극대화 할 수 있는 방안으로 기마전술을 활용하였습니다. 철제무기를 든 중무장한 기마병의 등장은 이 당시 사회에서 공포의 대상이었겠네요. 주몽에서도 보면 철제 기마병이 나오기는 페르시아 여백 외환 하던데, 사실 그건 허구입니다. 당시 한나라에는 철제무기로 무장한 기마병은 없었으니까요. 있었으면, 흉노 기마병 때문에 한무제가 그렇게 골치아프지 않았겠죠. 다 쓸어 버리면 되니깐.

암튼 최초의 통일국가였던 아시리아는 건국하자마자 얼마 안가서 망합니다. 그 이유는 철제 무기를 통하여 피지배민족들을 가혹하게 통치했기 때문입니다. 원래 아시리아는 미탄니에서 철기를 배운 뒤 독립한 작은 국가였는데, 정복국가로 발전하면서 피지배민족이 자신들의 민족보다 많아진 것을 감당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들 스스로도 전체 오리엔트 통일이 너무나 빨랐다는 것에 놀랐을 정도이니까요. 그들은 오로지 때리고, 죽이는 가혹한 정치로 정복당한 민족들을 학대하였습니다. 결국 아시리아는 메디아, 리디아, 신바빌로니아, 이집트로 분열되었고, 이렇게 4국으로 분열된 이후에는 신바빌로니아가 오리엔트를 주도하며 어느 정도의 세력 균형을 맞추어 갑니다.

아시리아가 망한 뒤 다시 오리엔트를 통일한 것은 그 유명한 페르시아입니다. 페르시아는 꽤 오래 가며, 훗날에도 같은 왕조가 나타나기 때문에, 이 때 통일한 페르시아를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라고 부르며, 왕조명을 붙여줍니다.

페르시아의 특징은 아시라아와는 달리 통일에 대하여 준비된 정책이 있었습니다. 이들의 정책을 한국사검정시험에서 답으로 물어본다면 아마 라고 하면 될 것 같네요. 페르시아는 그리스 지역의 에게해에서 페르시아를 거쳐 인도의 인더스강유역까지를 영역으로 확장한 거대한 통일 제국을 건설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민족간의 분쟁을 최대한 없애기 위해 피지배민족의 전통과 신앙을 최대한 존중해주었습니다. 또 고대 상권을 장악하고 있던 페니키아의 카르타고 지역의 무역도 보장해 주면서 무력이 아닌 세금을 징수하는 정책으로 피지배 민족을 다스립니다.

특히 유명한 다리우스 1세는 통일 후 강력한 아시아적 중앙집권체제를 완성합니다. 군현제도 정비, 도로역전제 정비, 감찰관의 파견, 세금제도 정비, 화폐제도 개혁 등의 업적은 중국을 처음 통일했던 진시황제의 정책과 거의 흡사합니다. 단, 페르시아 여백 외환 진시황제와 같은 법가적 무력통치가 아닌 관대한 통치라는 점만 다르네요. 다리우스 1세는 유대인을 해방시키고, 상업발달과 무역 및 외교를 장려합니다. 진시황제가 분서갱유로 유학자들을 다 때려죽인 것과 반대로, 다리우스 1세는 모든 종교의 화합과 단결을 주도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다리우스 1세는 한편, 관대한 통치 속에서도 제국의 단합을 위하여 국민적 종교인 를 정비하였습니다. 조로아스터교는 고대 세계에서 보기 드문 이원론적 종교라는 특징을 갖습니다. 불을 숭배한다는 의미에서는 배화교라고도 하죠.

용어를 좀 설명하자면, 고대 사회에서 유일신 여호와를 믿는 헤브라이, 유대, 이스라엘은 종교라고 합니다. 신이 1명이기 때문이지요.

다양한 신을 가진 수메르의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는 다양한 신을 가지고 있지만, 그 신들의 성격이 선함 1가지로 규정되어 있어서 이면서도 종교라고 합니다. 일원론적 종교란 선한 신이 세상을 통치한다는 단순한 관념을 가진 종교적 신을 말합니다.

그러나 조로아스터교의 신은 하나의 신이 선함과 악함을 동시에 가진 종교입니다. 이 종교는 조로아스터가 세상을 페르시아 여백 외환 지배하는 신을 2명으로 규정하였는데, 어둠의 신이자 악신은 아리만이고, 그와 싸워 세상을 구원하려고 준비하는 신은 아후라마즈다입니다.

이 종교는 선과 악이라는 뚜렷한 문학적 대립구조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기가 쉽습니다. 또, 동서 요충지라는 점에서도 전파하기가 쉽습니다. 이 종교는 유대교, 크리스트교, 이슬람교의 선, 악 사상에 모두 영향을 주는 고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종교가 되었습니다. 또 마니교 역시 이 종교가 동방문화와 융합되면서 탄생하며, 힌두교와 융합하면서는 시크교의 교리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줍니다.

이러한 페르시아의 몰락은 그리스 세계와의 치열한 전쟁이었던 페르시아 전쟁에 패하면서 서서히 시작됩니다. 결국, 그리스 세계를 통일하고 동방진출을 하던 알렉산더 제국에 망하게 되죠.

3. 이 지역은 너무나 개방적이였다.

페르시아가 망한 뒤 역사를 쭈욱 살펴보면 이 지역의 역사는 지금 이 자리에서 설명하기 너무 벅찰 정도로 어지럽습니다. 동서 요충지인데다가, 개방형 평야지역이므로, 이민족의 침입이 너무 쉽죠. 인도문화가 수도 없이 유입되고, 유럽에서는 쉴틈없이 쳐들어오는 지역입니다.

수많은 나라가 많지만 이 지역에서 그나마 가장 강한 나라들로 역사를 잡아보겠습니다.

오리엔트 문명 - 아시리아의 통일 - 페르시아의 통일 - 헬레니즘(알렉산더) - 로마제국의 지배 - 파르티아 - 사산조 페르시아 - 이슬람의 점령(헤지라) - 셀주크투르크의 시대(십자군 전쟁) - 몽고제국(일한국) - 오스만투르크 - 터키

. 대충 중심 국가들로 역사를 잡아도 이렇습니다. 정신없지요? 너무 이민족 국가의 침입이 많아 역사가 하나의 줄거리로 잡히지 않는 지역이죠. 그래도 전통 국가인 파르티아, 사산조 페르시아는 한번 짚어보겠습니다. 나머지 국가는 각각 그 지역 역사를 하면서 공부하셔도 될 듯 하니까요. 국가만 수십개인데. ㅋㅋㅋ

4. 파르티아와 사산조 페르시아

이 지역은 전술했듯이 동서무역의 요충지라서 동서문화가 쉴틈없이 섞이고, 나뉘어지는 곳입니다. 하지만, 동서무역의 요충지라는 건 상업적 마인드만 있는 국가라면 언제든지 팍~~ 발전할 수도 있다는 뜻이지요. 파르티아와 사산조 페르시아는 이런 이점을 최대한 이용한 국가입니다. 이들은 페르시아의 전통과 헬레니즘(동서문화의 융합)의 장점을 잘 살려서 동서문화를 나름대로 조합하였고, 그 조합된 문화를 동서로 다시 재전파하면서 가장 선진적인 문화 강국이 되었던 국가들입니다.

일단, 여기서 아셔야 할 것은 전에 오리엔트를 통일했던 페르시아가 이란계 계통이라는 점입니다. 이슬람(아랍계)이 본격적으로 서아시아에 들어온 것은 마호메트가 활동하던 시기인 헤지라(632) 사건 정도에나 가능한 일이니, 그 이전의 통일국가들은 대부분 이란계라고 보시면 됩니다.

파르티아는 이란계 유목민족이 세운 국가인데, 이 국가의 특징은 중국의 한나라와 로마제국의 사이에서 중계무역으로 큰 이득을 챙기던 국가라는 점입니다. 중국 한나라가 흉노족이 이 지역에서 비단을 싸게 파는 것을 보고, 흉노족을 견제하기 위해 비단길까지 개척하여 페르시아 여백 외환 이 지역에 왕래하였다는 일화는 유명하죠. 그런데 파르티아의 특징은 동서문화의 요충지 답게 문화도 그리스 문화와 이란 문화를 동시에 존중하였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반면, 사산조 페르시아는 국가 명칭에서부터 과거 오리엔트를 통일한 페르시아의 성격을 닮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사산조 페르시아는 페르시아의 전통으로 완전 복귀하여 민족적인 조로아스터교를 국교화하였습니다. 이들은 그리스신이나 이교도들 보다는 민족적인 것을 수호하려교 노력하였지요. 그러나, 이들도 중계무역을 하면서 동서문화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불교, 크리스트교(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 조로아스터교가 혼합된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고, 그 결과 동서종교를 조로아스터 입장에서 융합한 마니교라는 종교가 탄생하였습니다.

파르티아와 페르시아는 결국 귀족적이면서도, 국제적이고, 화려하면서도 동서융합적인 성격을 가진 국가였습니다. 이들은 국제적이면서도 화려한 예술 속에서 동서 문화의 융합을 시도하였고, 그 시도는 동방과 서양에 큰 영양을 주게 됩니다. 예로 마니교가 동양, 서양에서 다 같이 숭배되었다는 사실이 그것을 입증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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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 구속사와 세계사 여행 ② 페르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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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페르시아 여백 외환 페르시아 여백 외환 ‘바사’는 세계사의 페르시아 제국을 가리킨다. 현대 지도에서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영토를 그려보면 이란, 이라크, 터키, 이집트, 아프가니스탄 등을 포함하여 24개국의 전체 또는 일부에 걸쳐 있어 그 광활한 크기를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이란은 지금은 비록 쇠락했지만, 한때 페르시아 문명의 중심지로서 최고의 문명과 권력을 자랑했던 역사의 흔적을 지니고 페르시아 여백 외환 있다.

고레스 칙령이 발견된 하마단

에스라 6:2에 나오는 ‘악메다 궁’은 유대인들의 바벨론 포로 귀환과 성전 재건에 관련된 공간적 배경이다. 세계사에서 엑바타나(Ecbatana)에 해당하는 이곳의 현재 지명은 ‘하마단(Hamedan)’이다. 페르시아 제국을 이룬 아케메네스 왕조 다리우스 1세(성경의 다리오 왕)때 유대인들이 성전을 다시 짓던 중 사마리아 주민들의 방해로 성전 재건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이때 유대인들은 키루스 2세(성경의 고레스 왕)가 성전 건축을 허락한 ‘고레스 칙령’을 찾아줄 것을 다리우스 1세에게 부탁한다. 이때 고레스 칙령이 발견된 곳이 악메다 궁, 바로 하마단이다. 아케메네스 왕조의 여름궁전이기도 했던 하마단은 사산조 페르시아가 멸망한 7세기 이후에는 이슬람 세계의 중심 도시로 성장했으며 2차 포로 귀환에 기여한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무덤을 포함한 여러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어 페르시아의 보물창고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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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에스겔의 무대였던 슈슈타르(수산성)

현대 지도의 슈슈타르(페르시아 여백 외환 Shushtar)는 고대 페르시아의 겨울궁전 수산성에 해당한다. 유대 민족이 포로로 살았던 곳 중 하나로, 다니엘(단 8:2-5)과 느헤미야(느 1:1), 에스더(에 1:2-5, 4:8-17, 9:6)의 사건이 모두 이곳에서 일어났다. 수산성에 있을 때 다니엘이 본 환상에서 페르시아는 ‘수양’으로 묘사된다. 수양의 두 뿔은 메대와 페르시아를 가리키며, 두 눈 사이에 현저한 뿔이 있는 ‘수염소’가 나타나 이 수양을 짓밟는 것은 헬라 제국의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페르시아 제국이 멸망할 것을 가리킨다. 실제로 페르시아 제국은 주전 331년 가우가멜라 전투에서 다리오 3세가 알렉산더 대왕에게 패함으로 멸망한다. 모든 세계사가 하나님의 주권적인 구속사적 섭리 속에서 진행되는 것임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다.

한편, 에스더가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으로 남편 크세르크세스 1세(성경의 아하수에로 왕, 다리우스 1세의 아들)에게 나아가 하만의 모략으로부터 유대 민족을 구원한 사건과,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성에 대한 간절함으로 기도한 장소도 수산성, 즉 지금의 슈슈타르를 배경으로 일어났다. 현재 슈슈타르에는 다니엘의 무덤이 있으며 페르시아의 또 다른 수도였던 페르세폴리스(현대의 ‘파크트에 잠시드’)와 엑바타나, 사데(현대의 ‘사르티스’)로 가는 길의 중심 역할을 했던 것이 수사에서 사르디스까지 건설한 2,703km에 이르는 왕의 대로 및 관개 수로 등의 유적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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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루스 1세에 의해 건국된 페르시아 제국을 ‘아케메니드 페르시아’(BC 550-330)라고 하며 이 제국은 키루스 1세의 손자인 키루스 2세(고레스) 때 번성기를 누리게 된다. 키루스 2세는 기원전 546년에 리디아를 점령하고, 539년에는 바벨론까지 점령한 후 칙령을 내려 바벨론에 끌려온 유대인들을 풀어주고, 귀향을 허가했고 예루살렘 성 재건을 위한 재정적 페르시아 여백 외환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느 2:9~3:32). 귀환을 원치 않는 사람들은 돌아가지 않고 이란에 남아 살 수 있도록 하였는데 당시 남은 자들은 2,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란의 많은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다. 이는 그가 속국의 종교와 문화의 자유를 인정하고 약탈이나 위협행동을 금지시키는 정책을 통해 제국을 다스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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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페르시아 여백 외환 제국의 정책에 녹아 있는 구속사적 섭리

그 결과 고레스 왕은 역사상 여러 민족으로부터 칭송받는 왕이 되었다. 고레스는 ‘기름부음 받은 자’(사 45:1)라는 뜻이며, 바사 말로는 ‘태양’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일찍이 성경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고레스의 이름과 사역의 내용을 상세하게 예언하였다(사 44:28, 45:1-8). 그는 하나님의 ‘모략을 이룰 사람’으로 예비되어 바벨론을 멸망시켜 70년 만에 포로지에서 돌아올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는 도구로 쓰임 받았다. 그를 가리켜 이사야 44:28에서는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어 키루스 2세의 아들 캄비세스 1세 때 이집트를 정복하고, 다리우스 왕 때에는 동쪽으로 인도지역과 서쪽으로 그리스의 영토를 점령하여 흑해 무역권까지 장악하였다. 다리우스 왕 시대에 큰 제국을 통치할 수 있는 정치 시스템을 구축하였는데, 앞서 슈슈타르를 설명하며 언급한 도로 시스템과 후에 수에즈 운하의 페르시아 여백 외환 기초가 된 이집트에 건설한 운하, 쐐기문자의 보급, 화폐와 도량형의 통일 등이 이에 해당한다. 다리우스의 아들 크세르크세스 1세(아하수에로)는 그리스와의 살라미스 해전과 프라타에아, 미칼레 전투에서 패전하고 BC 465년에 암살당하여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성경의 아닥사스다 왕)가 즉위했다. 이후 주전 458년에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의 학사 겸 제사장 에스라의 인도로 2차 포로귀환이 이루어지고 주전 444년에 느헤미야를 중심으로 마지막 3차 포로귀환이 이루어졌다. 이후에 바사 제국은 셀류쿠스 장군이 세운 파르티아 왕조(BC 250-AD 226)를 거쳐 사산조 페르시아(AD 226-651)를 거치는 동안 632년 사산조 마지막 왕 야즈드게르드 3세가 이슬람 지도자 칼리드 이븐 왈리드(KALID IBN WALID)가 이끄는 아랍 기마부대의 공격에 패하여 역사의 막을 내리게 된다. 성경에는 오늘날 이란의 아케메니드 페르시아와 파르티아의 역사가 고스란히 들어 있다.

'은의 제국' 페르시아, 은 본위 화폐제 실시

다니엘서의 예언에 의하면 페르시아 제국은 은으로 된 ‘가슴과 팔’(단 2:32)이며, 네 짐승 중에서는 ‘곰’으로 묘사되었다(단 7:5). 두 번째 짐승인 곰은 몸 한편을 들었고 그 입의 잇 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다고 나와 있다. 페르시아는 최초로 은을 화폐 단위로 한 징세제도를 실시한 나라였으며 곰의 입에 있는 세 갈빗대는 페르시아가 점령한 ‘리디아’(주전 546), ‘바벨론’(주전 539), ‘애굽’(주전 525) 국가를 가리킨다. 이를 입의 잇 사이에 있는 갈빗대로 표현한 것은 이 나라의 탐욕성을 나타낸다. 이러한 페르시아 제국은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 귀환과 성전 재건에 관련하여 중요한 역할을 했다. 바벨론을 이스라엘을 심판하시는 막대기로 사용한 것에 이어 페르시아는 약속된 70년의 기한이 차서 선민을 해방케 하는 도구로 사용된 것이다. 결국 이 모든 것이 때로는 왕을 감동시키고 그 정책을 이끄시며 모든 제국의 흥망성쇠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우주적인 통치와 구속사적 섭리임을 페르시아 여백 외환 실감하게 할 뿐이다.

페르시아의왕자 공략 - Prince of Persia #스테이지1

스피드런을 위해서 칼을 안먹고 회피해서 간다던지, 피늘리는 물약을 최대치로 먹는다던지 여러 방법이 있는데 어려운건 적당히 포기하고 페르시아왕자 시작한지 2일차에 49분 클리어한 초보자 기준으로 작성되는 공략법입니다.

시작화면에서 우측하단으로 가면 흔들리는 발판이 있습니다. 멍하니 서있으면 낙하데미지를 입게되니 shift키를 이용해서 매달려서 내려가야합니다.

여기서 칼없이 스피드런을 하느냐, 칼을먹고 정석대로 가느냐가 갈리는데. 그냥 정석대로 칼을 먹고 진행하기 위해 좌측으로 이동합니다.

이제 함정도 나오고 발판과 연결된 문도 나오기 시작합니다. 페르시아의 왕자에는 대쉬점프/제자리점프 2가지 점프 방법이 있습니다.

대쉬점프는 조금 더 멀리까지 점프가 가능하지만 노란색으로 표시된것 처럼 최소 3개이상의 도움닫기가 필요합니다.

제자리 점프는 도움닫기는 필요 없지만 최대거리까지 가기위해 발판 끝에서 뛰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무튼 여기서 적절히 점프해서 발판을 밟아주시면 문이 열리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발판이 하나 더있는데 신경 안써도 되는건 귀찮아서 안그렸습니다;;

일단 아래로 내려와서 초록색 발판을 밟아 문을 열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점프를 해서 이동을 하는데 저 빨간 색 발판이 아래로 떨어집니다. 그부분만 주의해주시면 별 문제없이 넘어갈 수 있는 구간입니다.

빨간색으로 표시된 떨어지는 발판 두개만 주의하면 되는 간단한 구간입니다. 그냥 냅다 뛰어가주세요.

처음 해보시는 분들이 몇번이고 발판으로 되돌아가는 경우가 생기는 구간입니다.

녹색 발판을 밟으면 문이 열립니다. 빨간 발판은 떨어지는 발판입니다. 노란 발판은 문을 닫습니다.

녹색 발판을 밟고. 점프로 노란 발판을 피해서 가셔야 합니다.

여기도 발판이 하나 더 있는데 돌아갈때 문여는데 필요한거고, 어차피 무조건 밟아야 되니까 귀찮아서 안그렸습니다. 점프와 떨어지는 발판만 주의해서 가주시면 됩니다.

즉당히 매달려서 내려간다음 쉬프트로 칼먹고 다시 올라오시면 됩니다. 올라오셔서 진행한 역순으로 돌아가면 됩니다.

천장에서 떨어졌던곳 까지 돌아왔다면. 이제 다음은 적과 만날 순서입니다.

방향키 위로 올리면 막기. 쉬프트는 공격입니다. 그다지 어렵지 않으니 적당히 상대해주고 지나가시면됩니다. 실수로라도 ↓(방향키 아래)키를 누르게되면 칼을 집어넣고 한방에 죽을 수 있으니 조심하세요!!

좌측중간에 초록색 발판을 눌러주면 문이 열리게됩니다. 발로 안밟아도 저렇게 매달리기만해도 열리니까 시간 단축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여기까지 스테이지 1이 클리어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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